우리나라 차 역사와 문화
차의 전래
중국도입설 : 흥덕왕3년(828년) 견당사 대렴이 당나라에서 차씨를 가져와 지리산 쌍계사와 화엄사 일대에 심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있습니다.
자생설 : 영호남지역에 야생 토종차가 자생하고 있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고조선 시대의 차 생활
제천의식을 시행하던 때에 신께 바치는 성스러운 음료로서 백산차를 끓여 올렸다고 합니다. 백산차는 백두산에서 자생하는 약초의 일종인데 오늘날의 녹차와는 그 식물자체가 다릅니다. 아마 그 때에는 정월 초하룻날 조상에게 제사를 올릴 때 백두산에서 자생 하는 이 백산차를 이용하여 차례를 지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으며, 이것이 나중에 녹차로 계승 발전했다고 보여집니다.
신라시대의 차 생활
신라전기 : 고려시대의 학자인 이곡(1298~1351)의 기행문『동유기(東遊記)』중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화랑들이 차를 나누어 마심으로써 서로 강하게 결속할 수 있었고, 윗사람과 아랫 사람 사이에 예(禮)로써 화합할 수 있었다. 이렇듯 화랑들의 수행을 돕는데 차 생활이 한몫을 차지 하였다.'
원효대사(617~686)와 무애차 : 이규보의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무애차(無碍茶)를 수양의 방편으로 삼고자 원효방(元曉房)을 차렸다.'
선덕 여왕시대(632~647) : 차 마시는 풍습이 상류사회에서는 기호음료로, 서민사회에서는 감기 등의 치료제로 성행하였습니다.
643년 자장율사(590~658) : 당나라 청량산에서 문수보살께 기도하고 가사와 사리를 받고 돌아오면서 차묘목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문무왕(661~681)과 차 : 신라 제 30대 왕 법민(法敏)은 태종무열왕 김춘추를 아버지로 하고 김유신을 외삼촌으로 둔 가야계의 외손입니다. 삼국유사 제2권 가락국기에 보면 왕이 된 그 해 신유(辛酉:661)3월에 내린 조서에 외가의 시조인 수로왕의 제사를 지내게 하면서 차를 보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경덕왕과 충담사(忠談師)의 대화 :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765년(신라 경덕왕24)3월 3일에 신라에서 향가에 아주 능한 스님인 충담사와의 대화에 차가 등장합니다.
고려시대의 차 생활
차례(茶禮) : 국가의식과 불교의식,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의식을 차례라고 하여 차를 올렸습니다.
다방(茶房) : 차를 공급하는 궁정의 관청을 다방이라 하였습니다.
다소(茶所) : 각각의 절에서는 사원의 주위에 차를 생산하여 사찰에 공급하는 부락을 두고 사먹는 점포가 있었습니다.
다점(茶店) : 오늘날의 찻집과 마찬가지로 일반이들이 차를 기호음료로 돈이나 베를 주고 사먹는 점포가 있었습니다.
다선일체(茶禪一體) : 스님들께서 차를 마시어 선(禪)을 수행하고 수신(修身)하며 진리를 추구하여 도에 이르게 하는 매체로 사용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차 생활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1435~1493년) : 김시습은 세조의 왕권찬탈에 환멸을 느끼고 전국을 방랑하다 경주의 금오산에 7년을 칩거하여 원효의 무애차(無碍茶)를 이어 받아 말차 한 사발을 나누어 마시는 무애차를 애용하였습니다. 김시습의 시에서 차를 소재로 또는 주제로 삼은 작품은 70여 수에 달하고 있습니다. 몸소 차를 재배하기도 하고 만들면서 그 자신 또한 차의 성품에 맞춰 살아가려고 노력한 흔적들이 시의 면면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한재 이목(寒齋 李穆:1471~1498년) : 성리학자이며 다인(茶人)인 점필재 김종직 선생 문하생으로서 수업 하였고 『다부(茶賦)』를 저술하여 차 이름과 산지, 차나무 생육환경, 차달이기, 차의 현모함을 칭송하였습니다.
서산대사(西山大師:1524~1604년) : 차선일여(茶禪一如)생활을 주장하였습니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鎔:1762~1826년) : 『걸명소(乞茗疏)』등 47편의 시을 남겼으며, 다신계(茶信契)라는 계모임을 만들 정도로 차를 사랑하였습니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년) : 쌍계사의 만허스님으로 부터 직접 차를 얻어 마시기도 했던 김정희는 차문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차인입니다. 김정희가 쓴 다반향초(茶半香初)는 차문화의 깊이와 향기를 보여주며 조선에 널리 애송된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년) : 대흥사 위에 일지암을 짓고 다선일여(茶禪一如)의 경지를 몸소 실천, 한국 차의 중흥조, 1830년 중국의 다서인 다신전을 초록하고 그가 친술한 조선의 다경으로 불리는 동다송(東茶頌)은 차의 역사, 차나무의 품종, 차 만드는 법, 차를 끓이고 마시는 법, 차의 생산자와 품질 등을 노래한 책입니다. 특히, 중국의 육안차나 몽산차에 비해 맛이나 약효가 뒤지지 않는다고 우리차를 예찬하였습니다. 초의는 다산, 추사와 교류하면서 조선시대에 와서 쇠락한 차문화를 일으키는데 크게 공헌하였습니다.